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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나나의 일상살림

Her Story

마녀나나 2020. 6. 19. 09:23

청도에서 부산이라는 도시로 시집온 그녀는, 매일 밤마다 뒷동산에 있는 개에게 먹이를 주러 올라갔다. 매일 밤마다 어디선가 울려대던 섹소폰소리. 그렇게 구박하던 엄마도, 그렇게 폭력만 휘두르던 오빠가 있던 고향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고향의 하늘과 같을 그 하늘을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이 낯선 곳, 낯선 사람들, 끝없는 집안일,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은 없었다. 그 곳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 그녀는 그 배를 끌어안으며 그 서글픔을, 그 외로움을 삼켜야 했다.

나는 그녀의 설움과 한숨과 피눈물과 살을 갉아먹으며 자랐다.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던 그녀의 환경들. 상황들.... 도망치지 그랬어. 왜 그러고 살았어. 멀리 멀리 떠나지 그랬어. 라는 나의 말에 늘 돌아오는 대답은 이거였다. 너희들 때문에. 너희들이 있어서. 너희들이 잘 못 자랄까봐. 그녀의 꽃다운 젊음을 그녀의 청춘을 먹고 나는 무럭무럭 자랄 수 있었다.

모든 부모님들이 마찬가지였겠지만, 나의 엄마의 삶은 정말이지 녹록치 않았다. 그런 엄마의 인생을 이해하는데 반백년이 걸렸다.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일을 하면서 엄마의 삶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이 정도도 힘든데. 혼자서 어떻게 그 삶을 견뎌냈을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삶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긍정의 눈이 있다. 내가 자라면서 본 그녀는 숱한 불행의 늪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았고, 표정은 밝았다. 때론 이해할 수 없던 그 순간들이 이제는 존경으로 다가온다. 그러기 쉽지 않다는 걸 이제야 알기 때문이다. 살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던 그녀의 삶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정말 힘든 순간에도 그녀와 나는 눈을 맞추고 깔깔 웃을 꺼리가 있었고, 살을 부비며 농담을 했다. 남들이 보면 그 상황에 웃고 떠드는 우리를 보면 미쳤다고 했을거다. 하지만 그렇게 한바탕 웃고 나면 또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게 내가 그녀에게 받은 위대한 유산이다. 그 어떤 재산보다도 고귀한. 앞으로도 나는 그녀에게 보고 배운만큼 그렇게 살아갈거다.

그녀와 함께 걷던 그 바다 그리고 그 날의 섹소폰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Stranger on the sh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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